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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남미 유일의 혈맹국 콜롬비아의 6.25 참전 그 후

지난 3월,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콜롬비아의 A매치 평가전에서 한국이 2:1로 승리했으나, 경기중에 나온 콜롬비아

 

선수들의 비신사적 행동에 대해 유튜브에서 양 국가 네티즌들의 설전이 있었다. 그 중 내 눈에 들어온 댓글이 하나 있었는데, 아마 상당히

 

어린 우리나라 네티즌이 콜롬비아 사람들을 약올리려고 쓴 것 같았다.

"Korea can erase Colombia from the world map within 1 day"

"한국은 콜롬비아를 지구상에서 하루만에 없앨수 있는 군사력을 갖췄으니 입 다물어라" 라는 정도로 해석되겠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마치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보였는데, 만약 댓글을 단 유저가 콜롬비아가 6.25에 참전 했던걸 알았다면 저런 류의 댓글은

절대 쓰지 못했을 것이다.

( El Batallón Colombia ) ​

 

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북한의 남침에 의해 전쟁이 발발한 후, UN 안보리는 남한에 연합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가장 많은 군대를 포함한 미국을 필두로 총 16개국으로 이뤄진 연합군중에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군사적 지원"을 한 국가가 바로

 

콜롬비아다.  약 5,300명 정도로 구성된 콜롬비아 보병대는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연합군의 일부로 불모고지 등 에서 활약했는데,

 

사상자 통계에서 사망 163명, 부상 338명, 포로 30명 및 기타 실종 60명으로 집계되었다.

 

몇년 전 BBC에서 콜롬비아 참전용사를 인터뷰 한 적 있는데 그에 따르면 콜롬비아 북부 카르타헤나에서 한반도로 향하는 배에 탑승 할 때

 

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은 배가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몰랐다고 한다.

(어떤이들은 당시 소련의 통치하에 있는 크림반도로 가는게 아닌가 라고 추측 했었다고 한다)

게다가 콜롬비아의 참전배경에 대해서는 "인도적 성격보다는 당시 극우파 대통령이었던 Laureano Gomez가 세계 2차대전 동안 나치즘에

 

대한 동경으로 생긴 좋지 않은 이미지 세탁을 위함이 었으며, 게릴라 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앓던 콜롬비아는 제 코가 석자였지만 공산당

 

소련과 그걸 막기위해 대치중에 있었던 미국의 압력에 의해 국회에서 많은 반대가 있었음에도 참전하기로 결정했다" 라고 했다.

콜롬비아 군은 창설 이후 처음으로 전장에서 뛴 베테랑들의 경험을 살려 좀 더 체계적인 군대로 탈바꿈 하였고, 전쟁에서 귀환 한 후

 

한국전 참전을 바탕으로 사령관 까지 진급한 사례가 있으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부분이 전쟁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비극적 결말을

 

맞았을 뿐만 아니라 콜롬비아 또한 우리나라 처럼 국가유공자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여 빈민가에서 남은여생을 보내고 있는자가 많다고 한다.

( 수도 보고타에 개관한 약 4,100 평에 달하는 큰 재활 센터 )

 

6.25 참전배경에 있어서 순수한 인도적 차원에서의 참전이 아니었다 한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오늘날의 한국이 존재함에 있어 큰 기반이

되었다는 것 만큼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보상하는 차원에서 콜롬비아를 찾아 순국선열에

 

대한 기념식 참석, 국가적 무상 원조, 참전용사 손자 장학금 지원 및 2016년 8월에는 KOICA를 통해 수도 보고타에 "한국-콜롬비아 재활지원

 

센터"를 건립하여 부상당한 퇴역군인의 재활 지원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직업교육 및 사회 적응교육을 무상제공

 

해주고 있다.

( 콜롬비아 나리뇨주의 이름을 딴 나리뇨 함 )

 

게다가 2014년에는 80년대부터 우리 영해를 지키던 퇴역한 안양함(1,200t급)을 최첨단 기술로 재정비 한 뒤, 콜롬비아 인근 불법 마약

 

운반선 퇴치를 위해 정부차원에서 무상 양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