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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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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령 섬에 한국인이 15,000명이나 거주했었다?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이었던 1970년대.. 우리나라가 힘들었던 시절, 당시 젊은 남녀들은 광부/간호사로 외화벌이를 하기 위해 젊음을 바쳐 ​ 독일로 떠났다. 하지만 파독 이야기에 비해 대중들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비슷한 시기 정부의 뜻에 따라 ​ 낡은 원양어선에 승선하여 스페인령 군도 라스팔마스 (Las Palmas)로 떠난 사람들이다. 1966년, 처음으로 소수의 한국인이 탑승한 배가 라스팔마스에 입항하였다. ​ 섬이다 보니 많은 원주민들 또한 어업에 종사하였는데, 한국의 젊은이들 또한 이곳을 어업기지로 삼고 인근 아프리카 연안을 항해하며 어업활동을 시작했다. 해마다 더 많은 한국인들이 가세하여 70~80년대에는 전성기를 이루어 한국어선만 200척, 현지체류 한..
중남미 유일의 혈맹국 콜롬비아의 6.25 참전 그 후 지난 3월,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콜롬비아의 A매치 평가전에서 한국이 2:1로 승리했으나, 경기중에 나온 콜롬비아 선수들의 비신사적 행동에 대해 유튜브에서 양 국가 네티즌들의 설전이 있었다. 그 중 내 눈에 들어온 댓글이 하나 있었는데, 아마 상당히 어린 우리나라 네티즌이 콜롬비아 사람들을 약올리려고 쓴 것 같았다. ​ "Korea can erase Colombia from the world map within 1 day" ​ "한국은 콜롬비아를 지구상에서 하루만에 없앨수 있는 군사력을 갖췄으니 입 다물어라" 라는 정도로 해석되겠다. ​ 네티즌들 사이에서 마치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보였는데, 만약 댓글을 단 유저가 콜롬비아가 6.25에 참전 했던걸 알았다면 저런 류의 댓글은 ​ 절대 쓰지..
남미에 남겨진 대한민국 땅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 남쪽에 한국 땅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 ​ ​ 1960년대 후반 우리나라 정부는 늘어나는 인구의 분포와 부족한 경작지로 인한 식량부족을 대비하여 지구반대편 남반구에 위치한 파라과이 ​ (1,500 ha)를 시작으로 1978년 아르헨티나 (20,894 ha) 그리고 1980년 칠레(185 ha)에 토지를 매입하여 농업이민을 추진함과 동시에, ​ 구매한 토지를 농경지로 활용하여 수확되는 식량을 국내로 조달하기 위한 정책사업을 추진했었다. ​ ​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사업은 아르헨티나 북부 Santiago del Estero주의 야흐따 마우까 (Llajta Mauca)농장 사업으로 서울의 약 35%에 ​ 해당하는 면적을 그 당시 211만 5천 달러 (약 10억 / 당시..